대구 중구 남일동 진골목

2017. 1. 17. 06:12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진골목]


진골목은 '긴 골목'이라는 뜻으로,
경상도에서는 '길다''질다'로 발음하는데
이 때문에 '긴 골목'이 '진 골목'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진골목 식당과 미도다방 전경]


진골목에서 유명한 곳 바로 진골목식당과 미도 다방이다.
혹 대구에 들리실 일이 있으시다면 진골목 식당에서
얼큰한 육계장 드시고 나오셔서 맞은편에 있는 미도다방에서
차 한잔 하시면 좋으실것도 같다.

[미도다방 바같벽의 전상렬 詩]

[진골목 2]

[진골목 안내석]


여성 국채 보상 운동을 시작한 '진(긴) 골목'


1967년 2월21일 대구 금연대회에서
남자들이 나라 빛을 갚기 위해 금연을 결의하자
진골목에 살던 일곱분의 부인이 패물을 바쳤고
패물 헌납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안내글 내용)

 

 

 

 

 

[진골목 3]


'백록식당'은 한때 번화했던 북성로의 진골목에서
요정으로 이름을 날렸던 곳으로, 지금은 그때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한 한식 밥상을 받아볼 수 있다.


4인 이상부터 예약 가능하며,
예약이 없으면 일찍 문을 닫으므로
저녁 방문 땐 미리 예약을 해 두어야 한다 합니다.

 

[진골목 벽화]

[자세히]

[안쪽에서 담은 벽화]


진골목 벽화는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의 줄거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그 사이 골목에는 실제 소설의 주배경이 된 '백록식당'이 있다.

 

[약전 안내판]

[약전으로 들어가는 골목]

[골목끝 조각작품]

[근대문화 골목길 2코스 안내도와 설명글]

[진골목 안내 글]


대구토착지주 달성서씨 집성촌, 남일동 진골목


달성서씨들은 고려시대부터 대구에 정착한 지방 호족으로
조정에 헌납했던 달성 토성을 비롯 구암서원이 있었던 동산,
남산동, 계산동, 산격동 등 그들의 땅을 밟지 않고선 영남대로를
지날 수 없을 정도였다.


진골목에는 지주들이 모여 살았으며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시대
토지대장 기록에는 서씨들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10만석꾼으로 불리며 풍류를 즐겼던
석재 서병오, 한국인 최조의 무진회사였던
'조양무진' 사장 서창규, 경상북도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 이인성과 함께 근대화단을 개척한 서병기, 서병직,
국채보상회 간부였던 서병규,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에 참여한
서상규와 김웅섭, 고래등 같은 그의 집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서병원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대구출신 독립운동가 이시영의 사돈이 진골목에
서씨 재력가로 소문나 있어 그의 아들을 애국단에 가입시켜
자발적으로 군자금을 희사받기로 했으나 끝내 모른채 했다고 한다.


이시영은 그의 지벵 아들을 앞세우고 권총으로 위협하며
침임했다가 정체만 드러낸 채 실피하고 2년간 옥고를 치룬 사건도 있었다.


달성서씨 이외에 동산 99칸집의 주인인 인동출신 거부
장길상, 장직상 형제는 물론 한국인이 설립한 대구 최초의 은행인
'대구은행(경상합동은행)' 설립자인 재력가 정재학, 해방 이후
코오롱을 창업한 이원만, 약전골목에서 담재와 초재 거리를 하며
벼락 부자가 된 김성달 1971년 창업하여 연간 2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평화룰러치(현 평화발레오) 창업자 김상영, 1973년 문을 연 로얄호텔 사장 등
1970년대까지 재력가와 기업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거주지였다.
(진골목 안내글 내용 옮겨적음)

 

[진골목 안내글과 안내도]

[진골목 안내도 자세히]

[보도위에 적힌 골목투어 안내판]


이곳 역시 여기서 부터 시작하여 둘러봐야하는데....
전 또 다시 꺼꾸로.. 거슬러 내려갔나봅니다.


하긴 지난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요.
내려가면 미래겠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