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산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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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옻골 數咎堂(수구당)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87 대구문화재자료 제41호 [數咎堂(수구당) 전경] 마을 안길의 우측 골목에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一'자형의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있어 '二'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두 동 모두 남향집이다. 최흥원 선생의 처음 號(호)를 딴 數咎堂(수구당)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한다. [안내판] 이 건물은 백불암 최흥원이 제자들과 강학하던 곳이었는데, 후에 자손들의 살림집으로 개조되면서 사랑채와 안채 2동만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건립 당시 안채는 기와가 얹혀진 와가였던 반면 사랑채는 초가지붕을 갖추고 있었다. 1918년 두 건물을 고쳐지으면서 안채는 칸수를 늘리고 기둥을 높였으며, 사랑채에는 새로 기와를 올렸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중앙에 개방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2018.05.30 -
옻골마을 경주최씨 종택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06 [대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택 전경] 대구시 동구 屯山洞(둔산동)에 있는 옻골마을은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의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오목하다고 옻골이라고 불리웠다는 이야기와 주변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 옻골 또는 漆溪(칠계)라고도 불리웠다는 두가지 유래를 가지고 있다. [백불고택 인증 안내문] [百弗古宅(백불고택) 현판] 현판 글씨는 종손의 부친 崔秉瓚(최병찬)의 글씨라 합니다. [百弗古宅(백불고택) 전경] 조선중기 학자 催東集(최동집)이 1616년 이곳에 정착하면서 경주최씨 집성촌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경주 최씨 종가인 백불암고택은 마을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입향조인 최동집의 손자 최경향이 1694년에 지은 고택으로 대구지역 가옥..
2018.05.28 -
대구 옻골 東溪亭(동계정)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86 [동계정 출입문과 안내판 전경] 대구 동구 둔산동 391번지 알대에 있는 정자이다. 정자가 있는 곳은 옻골마을이며 경주최씨 종택 근처이다. 백불암 崔興遠(최흥원)의 아들인 동계 崔周鎭(최주진)이 일찍 죽자 그의 아들과 손자, 제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1910년대에 지은 것이다. 자손들에게 학문을 가르칠 때 사용했다고 한다. 정자는 방 2칸, 대청 1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2008년 4월 10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5호로 지정되었다. [동계정 안내판 글] 둔산동 옻골마을에서 동쪽에 위치한 이 정자는 百弗庵(백불암) 崔興遠(최흥원)의 아들인 東溪(동계) 崔周鎭(최주진)을 기리기 위해서 1868년 훼철되었던 동산서원의 자재를 이용하여 1910년에 세운 것으로..
2018.05.24 -
崔興遠(최흥원) 旌閭閣(정려각)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75 [마을 입구에서 담은 崔興遠(최흥원) 旌閭閣(정려각) 전경] 정려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門(문)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旌閣(정각)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이곳은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선생을 기리는 旌閣(정각)이다. [안내판] 둔산동 옻골마을 중간에 위치한 이 건물은 조선후기 영남의 대학자이자 효를 위한 덕목을 정하고 부모의 병을 극진히 돌보는 등 효행으로 유명하였던 百弗庵(백불암) 崔興遠(최흥원)을 기리기 위해 1789년 조정의 명으로 세운 것이다. 최흥원은 둔산동 옻골마을 입향조인 臺巖(대암) 崔東?(최동집)의 5대손으로 1705년태어나 82세를 사는 동안 평생 학문에 정진하면서 130여..
2018.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