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9. 06:02ㆍ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 679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8호
[구강서원 전제 모습]
문이 잠기어져 있어서 안을 들어갈 수
없기에 밖에서 찍은 사진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 살림집이 있으나, 굵게 뚝 뚝 떨어지는 빗방울
곡식 거두기에 더 바쁘신것 같아 여쭈어 볼 시간도 죄송스러워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하였다.
짝꿍이 멀리서 찍은 전체사진 속엔 한낮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담에 붙어 예쁘게 핀 들꽃을접사로 찍기 위해 쪼그러 앉은 나의 뒤모습이 담기어져 있네요. ㅎㅎㅎ
그러나 접사 찍기는 실패로 돌아갔음.
새로운 디카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ㅠ.ㅠ
[안내판 글 내용]
[龜岡書院(구강서원)]
이 서원은 조선 고종 8년(1871)에 철거되었다가
광무 8년(1904)에 다시 세워졌고 1961년에 수리되었다.
이곳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0호로 지정된
影幀(영정)과 文集木板(문집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벼슬이 문하시중까지 올랐으며 만년에는 왕명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
[가까이서 찍은 구강서원]
고려 후기의 유명한 학자
益齋(익재) 李齊賢(이제헌, 1287~1367)을
모신 곳으로 조선 숙종 12년(1686)에 세웠다.
고려 후기의 정치가이며, 학자이자 시인이다.
자는 仲思(중사), 호는 益齋(익재)다.
향년 81세로 장수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충숙왕 6년(1319) 元(원)나라에 갔다가
충선왕이 모함을 받고 유배되자 그 부당함을
원나라에 밝혀 1323년(충숙왕 10) 풀려나오게 했다.
공민왕 6년(1357)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학문과 저술에 몰두했다.
[益齋影幀(익재영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0호]
[안내판 글 내용]
[익재선생 숭묘비]
선생은 수제자였던 이색이 그의 묘지명에서
'道德之首 文章之宗(도덕의 으뜸이요, 문학의 종장이다)'
라고 말한 바와 같이 후세에 커다란 추앙을 받았다.
문학 부문에서도 그는 대가를 이루었다.
많은 시문을 남겼고, 고려의 한문학을 발전시켜
한단계 높게 끌어 올렸다.
선생의 詩 한수를 소개합니다.
登峨眉山(등아미산)
아미산에 올라
蒼雲浮地面(창운부지면)
검푸른 구름 땅 위에 떠 있고
白日轉山腰(백일전산요)
밝은 해는 산허리로 둘러간다
萬像歸無極(만상귀무극)
만상은 무극으로 돌아가니
長空自寂寥(장공자적요)
허공은 스스로 고요하기만 하다
한편 사학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저술로 현존하는 것은 益齋亂稿(익재난고) 10권과 櫟翁稗說(역옹패설) 2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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