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못해요. 절대로~

2015. 9. 12. 06:14카테고리 없음

 

 

 

먼 곳의 눈 소식,
가까이 비 지나가고 나서 어느새 성큼 다가온 추운 겨울
창 유리 깨끗하게 닦은 것처럼 먼 산도 산뜻하게 제모습 드러내고,
삶은 부드러움이며, 죽음은 강하다고 했던가?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부드러우며, 죽으면 굳어버리지요.
초목도 살아있을 때는 부드러우나, 죽으면 말라버려서 굳어버리지요.

즉, 삶은 부드러움. 죽음은 단단하며 강하다.
난 아직은 삶을 유지하고 있으니, 늘 부드럽게 살고 싶다.

 

강하고 굳게 살아서 미리 죽음을 탐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렇게 늘 마음먹고 행동하려고 해도 난 어제 또 실패했다. 
울 짝꿍 마음을 폭풍이 몰아치게 만들었으니까.
며칠전부터 추우니까 내복을 찾아놓으라고 하길래.....


"예"하고 대답은 잘했지요.

근데. 그놈의 깜빡하는 기질 때문에 에고~~~어쩌노!!!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여보 내복"
"네 드릴게요. 잠깐만요."
매년 넣어두는 곳에 있으리라 하고 가서 장롱 서랍을 열었더니,

 

오메!! 난 몰라~~~
여름옷만 한가득 들어 있네요.
어디 뒀을까??? 그때부턴 마음은 두근두근 정신은 헷갈려...,
이곳저곳 분주하게 열어봤지만, 보이지 않네요.

 

"내가 뭐카드노!! 며칠 전부터 부탁했잖아!!!"
"..............예 미안해요.. 잠깐만요..."

마음은 급하고 생각은 안 나고...나 참 환장하겠넹
"나또라!! 찾아도 안 입어!!!"

장롱위에 올려놓은 옷상자에서 소복하게 챙겨 넣은 짝꿍내복.
찾긴 했지만,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짝꿍을 어쩔꺼나~~~~

 

나 오늘은 살아있지만, 이 순간부터는 난 죽었오.
없응께, 없는사람 취급하랑께. 숨 딱 멈췄응께, 몰려... 
"다시 한 번 더 컴퓨터에 앉기만 해봐라. 도끼로 박살을 낼테니까!!!"
잉~~어쩌노??? 나 때문에 애꿎은 컴프트만 명제촉하네요.
".....................................미안해요......"


한참을 안방에서 혼자 오만소리 다 하지만, 생방송은 못해요.
절대로!!! 심사규정에 걸리거든요.

그리고 화나서 하는 소리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죽을 때까지 입 다물 거야~~~
잘못한 죄 때문에 암말도 못했시유~~~난


차려놓은 아침식사도 거르고 그대로 출근해 버렸습니다.

"오늘 3시에 데리려 오지 마!!!"
아직도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한마디 하곤 그냥 갔습니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화낸 건 처음 봤어요." 딸의 말.
"응 나도 결혼하곤 처음이다."

 

이그, 뭐든지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언제나 컴퓨터부터 모라고 혀~~
사실은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컴퓨터 앞에 너무 자주 앉은 것 같아...
시간만 나면...., 짝꿍한테 화나진 안았지만, 저 자신에게 화났어요. 
 난 왜 이럴까?? 왜 이런 일로 걱정을 들어야 하나???


일어 공부하러가는 날이지만 오늘은 가기 싫어 빼먹었어요.
부엌에서 설거지하며 난 나 자신이 너무 미워서 혼자서 속상해하고 있었지요.

가만히 내 어깨를 감싸주는 따뜻한 손
"엄마 화날 때는 무슨 소리든지 다 해요. 나도 그런걸요.."
이구~~울 막내 엄마 속 상할까 봐 날 위로해 주네요.
자식 키운 보람이 있는 거 같아.......힛

 

"엄마 그렇게 하시고 가신 아빠는 더 속상할 거에요. 엄마 참아요...네."
"아니, 괜찮아 내가 잘못했는걸 뭐...그냥 내가 미워서 그래.."
"엄마 그럴 수도 있지요..뭐...괜찮아요. 아빠도 곧 풀리실 거에요."
"응 알았어... 너도 학교 가야지...밥차려 줄게 먹어."

 

이렇게 아침밥을 차렸지만, 딸내미랑 막내랑 나랑 다들 밥 먹을 기분이 아니었지요.

그래도 어쩜니까, 난 엄마니까, 내가 먼저 먹고 아이들을 먹여야지요.
결혼 후 처음으로 아침 굶겨 짝꿍 보내놓고 사실은 한술도 넘어가지 않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억지로 삼켰답니다. 

막내는 학교로...딸아인 전화받고 친구한테....
다 가버린 텅 빈 집안에서, 화나면 잘하는 나의 특기
털고, 쓸고, 닦는 거 그리고 괜히 아직은 괜찮은 이불빨래까지 다 했어요.
장롱 속까지 다 끄집어 내어 찬찬히 다시 챙겨 넣고, 상자 앞에는 이름표를 달아 붙였답니다.

아빠 여름옷, 겨울옷, 내의, 등등..., 언제나 뒷북 선수 오늘 또 뒷북을 치며 혼자서 속상해하였지요.


사과의 전화라도 할까 했지만, 휴대폰도 그냥 두고 갔네요.
연락할 길도 없고 돌아오실 시간까지 맘 졸이며 기다릴 수 밖에는...
오늘은 온종일 근신해야지 짝꿍 맘 상하게 한 죄로..., 나에게 내린 벌.

 

털고, 쓸고, 닦고 땀 흘린 뒤에 맑은 공기 맘껏 들어오라고 창문마다 활짝 열어놓고는,

향긋하고 따끈한 커피 한잔하며 바라본 앞 베란다
빨랫줄에 대롱대롱 곶감이 되려고 매달린 한 접의 감빛이 눈부시다.

헛되이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오늘 하루라도 충실히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추신: 후후 뒷끝없는 짝꿍과 저녁에 화해했지요.
컴앞에 안가는 나를 보고...

"화나서 그랬으니까, 가서 컴해! 괜찮아!" 했지만
어젠 그냥 "아니요. 괜찮아요."하고 컴쪽으론 쳐다도 안봤음...히히...
나 엄청 혼났거든요. 2000년 11월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