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와 누각(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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涵溪精舍(함계정사)
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203-2 경상북도 문화재자료230호 [함계정사 전경] 좁은 길을 올라와 넓은 공터에 주차를 해 놓고 함계정사로 향했다. [안내판과 함계정사] [안내판 글 내용] [일각문과 함계정사] 정사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닫혀 있었다. 금연구역이란 표시와 함께 난 담배피우지 않는데...열어주면 안될까? [좌측 협문과 함계정사] 나의 속마음이 읽혔다보다. "이리로 들어와서 사진찍고 가셔요." "사진 찍어도 되나요?" 마음놓고 옆문을 열고 들어가서 찍으라 허락을 하셨다. 고마우셔라 고맙습니다. [涵溪精舍(함계정사) 현판] [涵溪精舍(함계정사)] 이 건물은 涵溪(함계) 鄭碩達(정석달, 1660~1720)선생이 숙종 28년(1702) 학문을 講學(강학)하기 위하여 정자 건립을 시도하..
2017.12.22 -
觀風樓(관풍루)와 大邱達城(대구달성)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294 달성공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觀風樓(관풍루) 전경] 옛날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조선 선조 34년(1601)에 세웠다. 觀風樓(관풍루)의 원래 이름은 '閉門樓(폐문루)'로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이름을 바꾼 것은 감사가 이 건물 위에서 세속을 살핀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 [觀風樓(관풍루) 현판] [觀風樓(관풍루)와 안내판 전경]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八(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이다. 건물 4면에는 난간을 설치했으며, 뒤편으로는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안내판 글 내용] [출입금..
2017.03.15 -
함계정사와 선원리 고택 연정
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599번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230호 [멀리서 바라본 함계정사] 이 건물은 임진왜란때 영천의병장 호수 정세아선생의 현손인 정석달(1660~1720)선생이 숙종 28년(1702)에 학문을 강학하기 위하여 정자 건립을 시도 하였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우선 소재를 지은것이 안락재이다. 그 후 정조3년(1779) 선생의 손자 일찬(1724~1797)공이 중건하여 함계정사라 하였다. 선생이 호는 하계, 본관은 오천, 갈암 이현일선생의 문인으로 학문을 탐구하여 인품과 덕망이 높았으며, 병와 이형상선생과 학문을 강론하면서 일생을 보낸 성리학자로 가례흑문등 문집이 남아 있다. [좌측에서 담은 함계정사와 안내판 전경] 정석달의 본관은 烏川(오천) 자는 涵溪(함계)이다. 葛庵(갈암..
2016.01.25 -
황희정승 영당지 내 伴鷗亭(반구정)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122 경기도 문호재자료 제 12호 [伴鷗亭(반구정) 전경] 경모재 앞 마당 건너에는 강바람을 막기위해 일부러 쌓아놓은 양 제법 높은 언덕이 성곽처럼 서 있다. 위에는 울창한 소나무가 서 있고, 그 사이로 숨은듯한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반구정과 앙지대이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이름 높은 재상인 방촌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던 곳으로,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 '伴鷗亭(반구정)'라는 이름을 지었다. '伴鷗亭重修記(반구정중수기)'와 '伴鷗亭記(반구정기)' 그리고 한글로 옮겨진 '반구정 중건에 붙이는 글' 등 여러개의 편액이 있다. [반구정 안내판 글 내용] [伴鷗亭(반구정)] 임진강변 언덕위에 세워진 반구정..
2016.01.22 -
黃喜先生影堂址(황희 선생 영당지)내 경모재, 월헌사등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 127 경기도 기념물 제 29호 [淸政門(청정문)과 뒤쪽에 보이는 건물이 방촌선생 기념관] 朝鮮初期(조선초기)의 名相(명상)이며, 淸白吏(청백리)의 대표격인 尨村 黃喜(방촌 황희, 1363∼1452)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영당이 있는 곳이다. 황희는 고려 말기부터 조선 전기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노력했고 世宗年間(세종연간)에는 영의정이 되어 왕을 도와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청백리의 삶을 통한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文宗(문종2년, 1452) 황희가 89세로 세상을 떠나자 세종의 廟庭(묘정)에 배향하고, 世祖(세조원년, 1455)에 유림들이 그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伴鷗..
2016.01.22 -
봉화 追遠齋(추원재)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870 시도유형문화재 제343호 [追遠齋(추원재)] 추원재는 단종조의 명신인 영의정 芝峯(지봉) 皇甫仁(황보인)이 수양대군에게 화를 입어 삼족을 멸하는 화를 당함에 지봉의 막내딸이 부군인 主簿(주부) 尹塘(윤당)과 함께 이곳에 은거하였다. [追遠齋(추원재) 현판글씨] [追遠齋(추원재)] 충재종택 우측편 계곡 내에 자리하고 있는 추원재는 종택과도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沖齋(충재) 權벌(권벌) 선생은 외조부인 주부공 내외분과 선생의 부모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자그마한 재실을 두었으나, 선생이 을사사화로 배소인 朔州(삭주)에서 돌아가시자 이곳에 유해를 모시고 재실을 지었으며, 그후 1671 후손들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북부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많은 재실..
201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