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찾아서(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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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貞公(충정공) 籠巖(농암) 金澍(김주)선생 묘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 51번지 [충렬당에서 담은 묘소 전경] 우거진 숲 사이로 멀리 산위에 보이는 곳이 농암선생의 묘가 있는 곳이며, 선생의 묘 앞쪽으로는 후손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합니다. 이곳은 제가 다녀온 곳이 아니라, 남편이 카페회원들과 다녀오며 담아 온 사진으로 대신하기에... 농암 선생의 묘만 소개하려합니다. [충정공 농암 김주 묘] 恭讓王(공양왕)때인 28세에 예의판서로 賀節使(하절사)가 되어 남경을 다녀오던 중 압록강에서 역성 혁명으로 조선이 개국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공은 3일동안 통곡하고 부인에게 서찰을 보내어 "충신은 불사이군이니 내 만약 강을 건너면 몸둘 곳이 없을 것이오. 이미 부인이 잉태하였음을 알고 있으니 만약 아들을 얻으면 이름을 揚燧(양수)라 하고 딸을..
2016.08.04 -
忠貞公(충정공) 籠巖(농암) 김선생 사적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 52 [사적지 입구쪽 신도비 전경] 좌측 대사헌 경질공 金之慶(김지경) 神道碑(신도비) 우측 그의 아들 좌의정 문대공 金應箕(김응기) 父子(부자)의 신도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일각문과 충렬당 전경]] 충렬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일각문이 닫혀 있어서 어디로 들어가야하나 살펴보니, 지나쳐온 훤히 열린 대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다. [충렬당 일각문 앞쪽 내판 글 내용] [입구쪽에서 담은 농암 김선생 사적지] 충정공 농암 金澍(김주) 생몰년 미상. 본관 善山(선산) 자 澤夫(택부), 호 籠巖(농암). 金濟(김제)의 아우로 高麗(고려) 忠臣(충신) 禮儀判書(예의판서)에 이르렀다. 1798년 정조는 忠貞(충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선생의 증손과 현손들은 높은 벼슬..
2016.08.02 -
鶴峯(학봉) 金誠一(김성일) 神道碑(신도비)와 墓傍石(묘방석)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산75-3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2호 [학봉 김성일 신도비각 전경] 神道碑(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며, 墓傍石(묘방석)은 墓(묘)의 바로 옆에 두어 墓(묘)의 주인공을 밝혀두는 것이다. 이 비는 조선시대 중기 柳成龍(유성룡)과 더불어 퇴계학파를 대표하였던 학봉 김성일 선생의 묘에서 약 50m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영남학파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이들 금석자료의 가치와 그 역사적 의미는 더욱 커진다. 신도비는 건립된 시기로 보면 경상북도 내에서 다른 비석에 비해 오래되었고, 규모가 거대하다. [신도비 머릿돌]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신과 이수를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세워놓았으며, 머릿돌에는..
2016.06.28 -
왜관철교와 6.25
소재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872번지 외 등록문화재 제 406호 [뒤쪽에 보이는 아치형 철교가 구 왜관철교] 왜관철교는 구한말 일제가 1901년 착공해 1904년말 완공한 붉은 벽돌과 석재로 만들어진 아치형 교각에 근대 철도 다리 중 보기 드문 트러스교로 1905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단선 철도교였다. 구 철교는 왜관교의 남쪽에 현재의 철교는 북쪽에 있다. [앞쪽 왜관교와 뒤쪽 구 왜관철교] 1941년 11월 강 상류 쪽 100m 지점에 복선 철교가 건설된 후부터 경부선 도로 교량과 인도교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격전지 상징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10월 등록문화재 제 406호 지정됐다. 1970년 11월 바로 위쪽에 경부간 국도의 왜관교를 새로..
2016.06.25 -
반남박씨 안동 입향조 박숙 묘와 德洞齋舍(덕동재사)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2리 640 [德洞齋舍(덕동재사) 전경] 안동입향조인 朴䃞(박숙)의 묘제를 위한 재실로 박숙 묘하에 있다. [우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전경] 재사란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수호하고 墓祭(묘제)를 받들기 위해 산소 아래나 가까운 곳에 지은 건물을 칭한다. [德洞齋(덕동재) 현판] [우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그 명칭에 있어서도 齋舍(재사), 齋室(재실), 齋宮(재궁), 齋閣(재각)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데 대개 齋舍(재사)라 지칭한다. [德洞齋舍(덕동재사) 내부] 묘소와 묘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조선 중기에 창건하였는데, 오랜 세월지나면서 건물이 낡아져 새롭게 중수하였다 한다. [좌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이곳의 옛 지명이 '德洞(덕동)'이기 때문..
2016.06.22 -
고려말의 문신 남휘주, 남민생 부자 묘
소재재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재사쪽에서 담은 設壇(설단) 전경] 보통 재사의 누마루는 산소를 바라보는 법인데, 南興齋舍(남흥재사)는 '設壇(설단)'쪽을 바라보고 있다. 남흥재사를 둘러보지 못하여 궁금하시다면 요기 클릭하셔서 들려보셔요. [유허비와 설단기념비 전경] '壇(단)'은 묘를 확인하기 어렵고 실전되어 찾을 수 없을 때 조상을 모시는 '設壇(설단)'이다. 여러 분의 조상을 合祀(합사)하여 제사를 모실 경우도 '壇(단)'을 차려 놓는다. 이럴 때는 神主(신주)를 모실 수가 없다 한다. [설단기념비 글 내용] [유허비 전경] [묘소로 가는 길] 설단옆 도로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그곳을 조금 더 오르면 묘소로 가는 길이 있지만, 무성한 풀들이 우거져 자칫하면 ..
201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