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29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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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백당 김계행 신도비각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묵계서원 옆) [보백당 김계행 신도비각 전경] "내 집엔 보물이 없고, 보물이란 오직 청백뿐이다" 라는 유훈을 남긴 보백당 김계행 선생(1431~1517년). 그는 일생을 대쪽정신으로 청렴결백하게 살다 간 선비였다. [보백당 김계행 신도비각] 보백당 사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1858년, 사림과 문중은 그동안 묻혀있던 보백당의 삶과 학덕을 기리는 포상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려 이조참판(종2품)을 증직 받는다. 종2품 증직으로는 보백당의 공적이 충분히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1859년 다시 1품계 이상의 증직과 시호를 받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보백당 김계행 신도비] 이에 조정은 그의 충효와 청백한 인품, 학덕을 인정해 판서의 증직과 시호를 내리는 것이 ..
2016.05.27 -
안동 晩休亭(만휴정)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3호 [만휴정으로 이어진 오솔길]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만휴정으로 이어진 오솔길 2] 조선시대 지어진 안동 晩休亭(만휴정)은 청백리로 추앙받는 金係行(김계행)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말년에 기거한 정자로 폭포를 비롯한 주변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정자건축 중 으뜸으로 꼽힌다. [용계폭포] 만휴정은 용계폭포 윗쪽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녹음이 우거져 수풀에 가려 윗쪽에 자리한 만휴정은 보이지 않네요. [만휴정과 안내판 전경] 나이 50에 청탁을 거부하고 과거를 치를 만큼 강직한 성격으로 벼슬이 이조참판과 대사헌까지 이르렀는데 연산군에 의해 시국이 어려워지면서 파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선생은 연산군 6년(1500..
2016.05.26 -
默溪宗宅(묵계종택)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735-1 경북민속자료 제19호 [종택 삼문과 앞쪽 안내판 전경] '默溪(묵계)'라는 지명은 원래 '居墨驛(거묵역)'이었다 한다. 1500년에 김계행이 머물면서 '默村(묵촌)'으로 바뀌었는데, 김계행이 晩休亭(만휴정) 냇물이 잔잔히 흐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默溪(묵계)'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종택 솟을삼문] 열린 대문에는 國泰(국태) 民安(민안) 이란 글이 붙여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꼭 필요한 말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생활이 평안해 진다면 더 바랄게 없겠지요. [솟을삼문 옆 벽에 붙어 있는 안동김씨-묵계종택] [寶白堂(보백당) 전경] 종택 솟을 삼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寶白堂(보백당)..
201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