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과 문학관(94)
-
白山(백산) 安熙濟(안희제) 선생 生家(생가)
소재지 :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168번지 경남문화재자료 제193호 [ 백산 안희제선생 추모비] 추모비 소재지 : 경남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 380-2 민족사상의 고취자요, 민족교육의 선각자이며 민족자본의 육성자, 영남지방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선생의 업적이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白山 安熙濟先生(백산 안희제 선생, 1885~1943) 선생은 1885년 8월 4일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나셨다. 호는 白山(백산). 7살 때부터 선생은 향리에서 집안의 형인 안익제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는데, 매우 영민하여 문리를 쉽게 터득하였고 문장에도 뛰어났다. 19세이던 1903년 7월 선생은 정석신 등 의령, 합천, 삼가, 진주, 하동 등지의 선비들과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를 유람하며 32수의 한시를..
2015.10.27 -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233 시도기념물 제 26호 [丹齋軒(단재헌) 전경] 申采浩(신채호, 1880∼1936) 한말 일제시대에 역사가,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했으며 26세 때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 기자가 되었다. 1905년 황성신문이 폐간되자, 그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초빙되어 당당한 시론을 써 민중을 계몽하고 정부를 편달하였다. [丹齋軒(단재헌) 옆 쉼터] [獨立有功者(독립유공자) 丹齋申采浩先生遺墟碑(단재신채호선생유허비)]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4월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위임통치에 반대하였다. [생가 가는 길..
2015.10.20 -
海公(해공) 申翼熙(신익희)선생 生家(생가)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서하리 160-1 경기도 기념물 제 134호 [생가 입구쪽 담벽] 답사길에 길을 묻기위해 들린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앞쪽 담벼락의 글을 읽고 이곳이 바로 해공 신익희선생의 생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우선 이곳부터 들리기로 하였다. [조금 더 가까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 생가 골목 입구에서 해공선생을 만났습니다.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골목입구에는 '사마루, 지는 노을에 해공 선생을 만나다.'라는 글이 제일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사마루는 말을 타고 마을을 지나던 네명의 고려충신이 마을의 모습이 누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신익희 선생의 주요 업적과 발자취를 소개하고 있었다. [해공선생 어록 담장] 골목안으로 들어가보았지요. 생가로 꺾어드는 담벽에도 ..
2015.09.10 -
山淸(산청) 南沙里崔氏古家(남사리최씨고가)
소재지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285-2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7호 [고가로 들어가는 골목길] 높다랗게 쌓은 돌담에는 담쟁이 덩쿨이 엉기어 있다. 녹음 짙은 계절에 들린다면 푸른잎들로 더욱 운치가 있을것 같다. [최씨고가 일각문 전경] 1985년 1월 14일 경남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최씨고가 일각문] 이 문을 들어서면, 남사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가장 큰 집으로 안채와 외양간채, 사랑채가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1930년대 지은 고택으로 1985년 1월 14일 경남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대문 우측 옆 담 너머로 보이는 막 개화하려는 백목련] [주의 글] [안내판 글 내용] [사랑채 전경] 사랑채의 좌우 2곳에는 중문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의..
201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