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芝薰(조지훈) 趙東振(조동진) 형제 詩碑(시비)

2016. 8. 8. 06:04갤 러 리/詩와 詩碑(시비)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조지훈 시비 안내 글]

[입구쪽에서 담은 趙芝薰(조지훈) 詩碑 (시비) 시인의 숲 전경]

느티나무, 팽나무 등, 노거수의 온갖 잡목이 어우러진 수풀은
녹음이 짙어지는 오월을 맞아 푸름을 더해가고, 지훈의 시비는
그 속에서 짙은 초록의 물결로 나그네를 맞이해 주었다.

시비는 1982년 8월 15일 광복 37년을
기념하여 문하생 500여 명이 뜻을 모아 세웠다.

 

[芝薰詩碑(지훈시비)]

16세가 되면서 서울로 올라가 향리의 선배 시인인
吳一島(오일도) 밑에서 출판일을 도우며, 보들레르, 와일드, 플로베르 등의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면서 문학적 수업을 닦아 나갔다.

지훈은 암흑의 식민지 시대에 민족의 영혼을 되찾으려
철두철미 전통으로 회귀한 선비시인이요, 지사志士시인이다.

흔히들 그를 가리켜 '靑鹿派(청록파)' 시인이라고 부르듯,
그는 암울한 시대에 민족의 영원한 이상향인 청산에서 한 마리
'푸른 사슴'으로 고고한 품격을 지키며 살고자 했다.

 

[詩碑(시비)에 새겨진 빛을 찾아가는 길]

잘 다듬어진 장방형의 화강암으로 받침을 삼아,
비의 앞면에는 그의 詩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새겨놓았고,
뒷면에는 주실 마을의 유래와 지훈의 간단한 행장.
그리고 후인들의 추모의 정을 적어 놓았다.

 

[시비 뒤면의 글 내용]

다른 청록파 시인들이 훗날 그들의 시 작풍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지훈만큼은 초기의 자연친화와 고전적
시 세계를 그대로 견지해 나갔다.

전통적 제재를 섬세한 민족적 정서와 언어로
신고전주의라는 민족시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놓은 것이다.

 

[趙東振(조동진) 詩碑(시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엔
지훈의 형님 世林(세림) 趙東振(조동진)의 시비가 있다.

세림은 아우 지훈과 더불어 마을 소년들을 중심으로
'꽃탑회'를 조직하여 문집까지 만들어 내는 등, 문학에 대한
정열이 대단하였으나 21세의 나이에 병마로 요절한 미완의 시인이다.

지훈이 생전에 적은 추모의 글을 담아 그를 아끼는
고향의 친구와 가족들에 의해 최근에 건립되어,
형제의 시 동산으로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詩碑(시비)에 새겨진 국화]

詩碑가 있는 숲에서 장군천 개울을 건너면 바로 주실마을.
양지바른 산자락 여기저기에 오랜 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은 한 눈에도 유서깊은 마을임을 느끼게 한다.

주실마을은 차례로 다녀온 석보면의 두들마을,
영양읍의 감천마을과 함께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었다.

더불어 이 고을들은 3대 문인을 각각 배출했으니,
주실은 조지훈의 생가요.
감천은 시인 오일도의 향리요,
두들은 작가 이문열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