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된 당신이 그립습니다.

2015. 7. 27. 05:19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뒷문을 열면 곧바로 하이얀 모래사장과 연결되어
넓게 펼쳐진 바닷가엔 하얗게 포발져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수평선 저 멀리 점점이 보이든 돛단배와 파아란 하늘 뭉개구름
갈매기 높이 날던 시댁 강원도 동해바다
철석~철얼석~~싸르르~~스르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 자연의 소리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습니다.
 
가을이면 생감을 사서 단지에 차곡차곡 담아,
바닷물을 길러다 팔팔 끓여 부어,
삭히어 두셨다가 우리가 가는 날 수북하게 꺼내놓고는
먹으라고 권하시곤 하시던, 어머님

 

장독을 열고 차가움에 떨면서 살얼음 사이로 손 넣어
꺼내곤 하던 삭인 감의 시컴 달콤 짭짤 했던 그 맛
지금도 잊지 않고 혀끝에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감자를 갈아서 무쇠 솥뚜껑 뒤집어 놓고 부쳐먹던 
감자전, 어느 것 하나도 그립지 안은 게 없습니다.
연세가 너무 높아 인자하신 할머니 같으셨던 시어머님
 
결혼할 당시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칠순을 넘으셨답니다.
어머님 소리보다 언제나 할머니 소리가 먼저 튀어나오려고 해서,
늘 긴장하고 조심했습니다. 실수할까 봐~~

며느리보다는 손주 며느리 같이 예뻐해 주셨지요.

오늘은 왠지 할머니 같으셨던 시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여름방학이 되어 뵈오려 올라가면 언제나

대문밖에서 우릴 기다리시며 서성대시던 어머님

아버님은 그냥 “오냐 잘 왔다” 이 말씀 한마디면 오는 날 까지

말씀은 안 하시지만, 침묵으로 보살펴 주셨지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곤 조금 떨어져 피워놓은

모깃불(낙엽) 뒤적여 놓고, 살피상에 누으신 어머님 옆으로

슬며시 다가가면 장작처럼 딱딱해진 팔을 벌려주셨지요.

 

어머님 팔베개 베고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면, 헤아릴 수 없이

빤작빤작 빚나던 많은 별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낙엽 타는 냄세는 매캐하면서도 코끝을 간질였습니다.
칙 폭폭 칙칙폭폭 기차가 지나기도 하는 평화롭고 그림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일어나서 이슬 내린 새벽길을

종종걸음으로 우물물을 길러오곤 했습니다.
집안에 펌프는 있었지만은 바다와 가까워

짠기가 있어서 동래 우물에서 길러다 먹곤 했습니다.

 

밥하는 틈틈이 눈을 돌리면,

뒷문 활짝 열린 곳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아침이 깨어나는 소리 싱그러운 소리

시뻘겋게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은 눈 부셨어요.
 
시어머님 새댁시절 해일이 몰려와선 집 주위를 빙둘려

스치고 지나간 바닷물 자국을...아침에 일어나서 보시곤

썸찟했었다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바다와 가까이 집이 있었어요.

 

여름 한철 피서하긴 참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좋아라 맨발로 뛰어다니고
난 하루종일 식순이 노릇해도 그 땐 불만도 없었답니다.

아이들이 좋아라 하니 좋았고, 짝꿍이 흐뭇해하니 또 기쁘고...
시부모님 여름한철 편하게 모실 수 있다는 것 또한 기뼜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린 여름방학,

겨울방학 밖에는 가지 못하였거든요.
연탄 때는 부엌 옆에는 커다란 무쇠 솥

걸어놓고, 나무를 때던 아궁이도 있었습니다.


군불을 지필려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전 온통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도 그때가 아련하게 이 아침 그리워 집니다.

 

가끔 모아놓은 솔가지나, 낙엽 등에 불을 지피면
솔향기 낙엽향기 커피향 저리 가라지요.
따끈한 숭늉을 짝꿍이랑 마주보고 마시면서 행복했답니다.

 

한 달 내내 시댁에서 지내고....
돌아오기 전날 밤이 되면,
어머님은 절 가만히 불러서 어디다 숨겨두었는지...
곰팡이가 쓴 꼬깃꼬깃한 돈을 펴서 저에게 건네주시곤 하셨답니다. 
 
“얘야 수고했다.”
“어머님 이게 뭐예요.”
“얼마 안 돼, 아비 모르게 너 먹고 싶은 것 사먹어라...”
“..............................”

 

울컥올라오는 고마움에 눈시울이 젖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어머님 당신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 오늘은 당신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2005년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