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8. 05:46ㆍ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조금은 한가한 아침나절 앞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누굴까? 얼른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어머님 저 에요."
"응 그래, 왜?"
"그냥 요...."
"저...어머님 수원 언제 가세요?"
"왜?"
"이번 주에 가신다면 저도 따라갈까 하구요."
"아이 둘 데리고???"
"민지는 지금 집에 없어요. 사모님이 봐 준다고 데려 갔어요."
"그래, 근데....우린 이번 주도 다음 주도 아닌 다 다음 주에 가는데..."
"왜, 그렇게 멀리 날을 잡았어요?"
"몰려 그때 오라고 하데....."
"이번 주에 가면 따라가려고 했는데....."
작년 11월 결혼한 시누이 집 한 번도 가보지 못해 가고 싶었나 보다.
친구처럼 지내는 시누가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또 보고 싶기도 했나 보다.
임신을 한 딸아이가 일찍 가면 내진을 할까 봐
그게 싫어서 좀 늦게 병원 갈 날을 잡았기에 그때 오라고 했는데...
그때쯤 맞추어서 올라오라기에 약속을 했는데....
처음이라 혼자서 산부인과에 가기가 좀 그랬나 보다.
병원도 병원이지만, 마른반찬도 좀 해달라는 딸아이 부탁이다.
시무룩해져서 끊어버린 전화기 앞에서 며늘아기의 서운한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다음 다음 주는 어떻게 될지? 그때까지 민지를 맡겨둘 수 없으니 그랬을 거다.
둘 데리고 움직이긴 쉽지 않으리라....
하긴 나도 가고 할아버지도 가면 좀은 쉽겠지만,
대구서 수원 길 먼 길을 가자고 봐 줄 테니까 함께 가자고 하지 못했다.
무더운 여름이고 긴 여행길에 아이들도 문제고
래균 차멀미를 하는것 같은데...긴 여행길은 힘들 것 같고...
또 까다로운 남편 언제 아플지 모르는 통풍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오고가는 길까지
운전기사를 해야 할 내 몫의 일이 그렇게 하자하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짝꿍과 단둘의 여행길이나 볼일에도 난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언제 무슨 일이 도화선이 되어 터질지....
단둘이 있을 땐 나 하나만 참고 꾹 눌려 참을 수 있지만,
며늘아기 앞에선 그러기가 싫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가 싫다.
시아버지의 급한 성격과 부글부글 올라오는
화를 삭이려 애쓰는 내 모습을 보이기가 싫다.
그런데 며늘아기와 손자 손녀 둘까지 합세를 하면
난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시원스럽게
'얘야...함께 가자 내가 봐 줄게' 하지 못하는 내 맘을...
아마 며늘아긴 이해해 주지 못하고 서운하게 생각할 것 같아
신경이 쓰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말해도 모른다.
며늘아긴 두렵지 않나 보다 시아버님이...
우리아이들 나 모두가 다 무서워(?)하는 아버지(남편)를...ㅎㅎㅎ
며늘아기가 다니는 교회 사모님이 혼자서 힘들다고 민지를 데리고 가서
일주일, 이 주일씩 봐 주기도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마음이 무겁다.
며늘아긴 자랑처럼 말하지만, 할머니가 아닌 사모님도 봐 주시는데....
할머닌 뭐해요!...하는 말로 들린다. 내 귀엔...
등이 불에 댄 듯이 화끈거리고 등짐을 진 것처럼 무겁다.
왼쪽 발은 막내를 가졌을 때 불거져 나온 심줄이 요즘 들어 자꾸만 얼얼하게 아파져 온다.
무거운 걸 들면, 통증이 오는 팔도 그렇고.... 봐 주기 싫은 이유 같지만,
이유가 아닌 사실을 겉모습이 멀쩡하니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잠시도 눈을 떼면 안 될 손자나 손녀가 있는 날은
난 반나절이라도 금방 파김치가 된다.
이래저래 거절을 하고 나면 한참을 난 속이 상한다.
나 자신에게...며늘이에게...남편에게...
옛 시어머님들처럼 당당하지 못하고 자꾸만 며느리 눈치가
보이는 나 자신이 싫다.
그럭저럭 깊어가는 밤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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