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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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선생 사당및 묘소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신채호선생님을 모신 사당] 20세에 성균관박사가 되었으며, 황성신문의 기자로 논설을 쓰며 을사조약 체결을 단호히 배격하였고, 대한매일신보에 초빙되어 주필로서 국권회복, 민족의식 고취에 공헌하였다. 28세 무렵에 이동녕·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1910년 해외에 망명한 후 본격적으로 국사 연구에 힘써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등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안내판 글 내용] [사당앞에 있는 간단한 선생님의 약력을 적은 비문] 1919년 상해임시정부수립 후에는 의정원 전원위원장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旅順(여순)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순국하였다. 뒤늦게 정부에서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
2015.10.23 -
丹齋(단재) 申采浩(신채호) 선생 기념관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성면 귀래리 350 충청북도 기념물 제90호 [고드미 녹색마을 안내도와 안내글 내용] [기념관 앞쪽 단재선생 하늘북 시비] 단재 신채호 선생에게 국적이 없다? 믿기지 않고 놀라운 일이지만, 실제로 신채호 선생에게는 국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관련해 "일제는 강점 직후인 1912년 '조선민사령'을 제정하여 조선인의 호적을 완전히 장악했는데 단재는 그 이전인 1910년 중국 청도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국 망명했기 때문에 호적상 무국적인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중국의 차디찬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단재 신채호 선생은 국적도, 호적도 없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호적령에 따를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던 선생이 애통한..
201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