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조광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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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庵(정암) 趙光祖(조광조) 선생 流配地(유배지)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174 전라남도기념물 제41호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출입구 와 안내판 전경]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유허비 안내판 글 내용] [愛憂堂(애우당) 현판] 愛憂堂(애우당) 현판은 後學(후학) 李炳玹(이병현)의 글씨라 합니다. [입구쪽에서 담은 애우당 옆 전경] 謫廬(적려)란 귀양 또는 유배되어 갔던 곳을 이르며,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두는 비를 말하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종 때 이곳에 유배당한 조광조 선생의 옛 자취를 기록해 두고 있다. [우측에서 담은 애우당 전경] 愛憂堂(애우당)은 정암조광조 선생이 사약을 받은 자리라고 전해지며 그 자리에 건물을 세웠다 합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에 가운데 마루를 둔 구..
2019.07.23 -
趙光祖先生(조광조선생)의 묘역과 絶命詩碑(절명시비)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산55-1 [한양조공정암선생묘역 안내 표지석] 趙光祖(조광조,1482~1519) 중종 5년(1515) 사마시에 합격한 후,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시대적인 분위기를 타고 관직에 나섰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유교로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至治主義(지치주의)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고 향촌의 상호부조를 위하여 '呂氏鄕約(여씨향약)'을 8도에 실시하였다. [표지석 뒷면] 金銓(김전). 남곤. 高荊山(고형산). 심정 등은 熙嬪洪氏(희빈홍씨)의 아버지인 홍경주를 중심으로 희빈홍씨를 통해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광조에게 돌아갔다'고 과장하면서 그대로 둘 경우 왕권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走肖爲王(주초위왕)'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새겨 왕이..
201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