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선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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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선생 생가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233 시도기념물 제 26호 [丹齋軒(단재헌) 전경] 申采浩(신채호, 1880∼1936) 한말 일제시대에 역사가,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했으며 26세 때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 기자가 되었다. 1905년 황성신문이 폐간되자, 그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초빙되어 당당한 시론을 써 민중을 계몽하고 정부를 편달하였다. [丹齋軒(단재헌) 옆 쉼터] [獨立有功者(독립유공자) 丹齋申采浩先生遺墟碑(단재신채호선생유허비)]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4월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위임통치에 반대하였다. [생가 가는 길..
2015.10.20 -
丹齋(단재) 申采浩(신채호) 선생 기념관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성면 귀래리 350 충청북도 기념물 제90호 [고드미 녹색마을 안내도와 안내글 내용] [기념관 앞쪽 단재선생 하늘북 시비] 단재 신채호 선생에게 국적이 없다? 믿기지 않고 놀라운 일이지만, 실제로 신채호 선생에게는 국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관련해 "일제는 강점 직후인 1912년 '조선민사령'을 제정하여 조선인의 호적을 완전히 장악했는데 단재는 그 이전인 1910년 중국 청도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국 망명했기 때문에 호적상 무국적인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중국의 차디찬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단재 신채호 선생은 국적도, 호적도 없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호적령에 따를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던 선생이 애통한..
201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