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율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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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대율리 마을 둘러보기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大廳(대청) 전경]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大廳(대청)을 둘러보시려면 요기 클릭 대청 앞 잔디밭에는 2008년 국립민속박물관이 마을 조사를 실시했다는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에는 '돌담과 함께하는 부림의 터' '한밤마을' 등 두 권의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적고 있다. [담너머로 담은 남천고택 전경]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4호 南川古宅(남천고택)을 둘러보시려면 요기 클릭 [敬義齋(경의재)] 敬義齋(경의재)를 둘러보시려면 요기 클릭 [缶林洪氏宗宅(부림홍씨종택) 표지석] 缶林洪氏宗宅(부림홍씨종택)을 둘러보시려면 요기 클릭 [전통민가 입간판] 철장으로 둘러쳐진 대문은 닫혀 있고, 먼 거리에 건물이 보였지만, 둘러볼 수 없다. 인기척도 없고, 주인을 불러서까지..
2017.11.03 -
대율리 敬義齋(경의재)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敬義齋(경의재) 출입문] 출입문은 열려 있었지만, 들어가지 못하였다. 관리인인듯 한 어르신께서 풀을 뽑고 계셨기에 잠시 들어가 사진만 찍고 나오면 안되겠느냐 여쭈였더니, 단칼에 "안되요" 하신다. 저도 두말 않고 뒤돌아섰지만, 그냥 올 수는 없지요. 대문 밖에서 스맛폰으로 멀리서, 줌으로 당겨서 담아 오면서 안내판과 건물사진만 찍고 나오는데... 하고 속으론 서운하게 생각을 하였지만, 다녀와서야 그 이유를 알고는 서운했던 마음이 죄송함으로 바뀌었어요. 관광객의 무질서가 마음문을 닫게 하였다는것을... [밖에서 담은 경의재 전경] 이 건물은 조선조 정조 을해(1779)년 휘 귀응 호 남천공이 족친들과 힘을 모아 한 체의 공당을 창건하고 이름을 異塾(이숙)이라 불렀..
2017.11.02 -
대율리 南川古宅(남천고택)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768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4호 [대청 앞쪽에서 담은 남천고택(상매댁) 전경] 대율리 전통마을의 상징은 南川古宅(남천고택)으로, 上梅宅(상매댁) 또는 雙柏堂(쌍백당)등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마을을 돌다보면, 缶林洪氏(부림홍씨) 宗宅(종택) 이 따로 있지만, 그곳보다 이곳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남천고택(상매댁) 출입구와 돌거북과 안내판 전경] 마침 대문을 열고 나오시는 고택의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대문을 닫고 자물통으로 채우려 하시기에 허락을 얻기위해 여쭈였지만, 외출중이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인 출입을 금한다고 하신다. 속으론 약간 언잖았지만, 그럴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심 서운하긴하다. 이곳까지 와서 대문밖에서 거부를 당하였으니.....
2017.11.01 -
대율리 缶林洪氏(부림홍씨) 宗宅(종택)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缶林洪氏(부림홍씨) 宗宅(종택) 표지석] [마을 돌담길] 이 마을은 돌담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힐 정도로 운치가 있다. 이 돌담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부림홍씨 종택이 있다. 한밤마을은 본래 深夜(심야) 또는 大夜(대야)라고 불리던 곳이다. 그러나 1390년경 홍씨 14대손 홍로가 大栗(대율)로 고쳐 불렀다. [缶林洪氏宗宅(부림홍씨종택) 표지석] [宗宅(종택) 삼문] 경북 군위 부계면에 자리한 전통마을로 950년께 남양 홍씨에서 갈려 나온 부림 홍씨의 시조 홍란이란 선비가 입향하면서 촌락을 형성했다. 그 무렵 의홍 예씨, 신천 강씨 등도 마을로 들어왔으나 모두 떠나고 현재는 여양 진씨, 전주 이씨, 예천 임씨, 영..
2017.10.31 -
大栗里(대율리) 大廳(대청)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번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大栗里(대율리) 大廳(대청) 전경] [안내판 글 내용] [大栗洞中書堂(대율동중서당) 현판] 대청에 내걸린 '大栗洞中書堂(대율동중서당)' 현판은 100여 년 전에 완산군이 쓴 친필의 탁본이고, 친필은 분실을 우려해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합니다. [大廳(대청) 天障(천장)] [大廳(대청) 전경] 마을 중심부에 있는 누각형 대청 건물이다. 일설에 율리라는 전부락이 사찰지였고, 이 대청은 대종각 자리였다고 한다. 원래 이 대청은 조선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그 후 효종과 숙종 때 각각 다시 수리되어, 예전에는 學舍(학사)로 사용되었으나, 지금는 마을의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大廳(대청) 뒤쪽 전경] 대청..
2017.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