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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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만세운동 기념관 2층 둘러보기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116 [3.1운동 기념관 전경] 일제강점기 대구·경북 지역 독립운동과 근대 사회. 교육 운동의 산실이었던 대구YMCA의 전신인 교남YMCA회관이 10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2층 전시실 내부 전경] [브루엔 傅海利(부해리)] [블레어 邦惠法(방혜법)] [플레처 鱉離秋(별리추)] 브루엔 傅海利(부해리, 1874~1959) 교남(대구)YMCA 설립 주창자 및 발기인 1899년 5월 1일 대구선교사로 임명 블레어 邦惠法(방혜법, 1879~1945) 교남(대구)YMCA 명예총무 교남(대구)YMCA 회관 건축 감리 및 경북서원 운영 플레처 鱉離秋(별리추 , 1882~1970) 교남(대구)YMCA 창립 발기인 제중원의 원장 [李萬集(이만집)] [金兌鍊(김태련] 李萬集..
2017.06.27 -
대구 3.1만세 운동 기념관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116 대구광역시 등록문화재 제570호. [대구 3.1만세 운동 기념관 전경] 일제강점기 대구, 경북 지역 독립운동과 근대 사회, 교육 운동의 산실이었던 대구YMCA의 전신인 교남YMCA회관이 10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1층 내부 전경] 일제 강점기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회합의 공간이자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민족운동의 거점이었던 건물이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물산장려운동과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공간으로 사용된 역사적 장소이다. 1938년 매각 후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대구중구청과 대구YMCA가 2011년 대구시민 모금운동을 펼쳐 매입했다...
2017.06.26 -
67주년 6.25와 도심속 평화
6.25 전쟁이 일어난지 벌써 67주년. 다시는 전쟁이 이 나라에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것 같은 불안불안한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선열님들이 지켜낸 우리나라 금수강산 지키고 발전시켜 후대에 물러줘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우리 모두 자신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너나 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들이 되어야겠다.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에 떤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2. 아 아 ..
2017.06.24 -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인터넷에서 모셔온 이미지]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카톡 하고 울린다. 김천사는 큰 남동생에게서 온 카톡이다. 유효기간이 6월29일까지인 음성파일을 보내왔다. 당연 클릭해서 열어보았지요. '주님 손잡고 일어나세요.' 복음성가였다. 근데, 목소리가 왠지 귀에 익다. 아하 울 동생이 직접 녹음하여 보냈나보다. ' 네가 불렀니?' 하고 카톡을 보냈더니 방금 퇴근하고 와서 녹음해서 보냈다고 한다. 이쁜 울동생 누나가 힘들까봐 주님 손잡고 힘을 내라고 보낸것 같다. [인터넷에서 모셔옴] [유튜브에서 모셔온 영상] 동생이 보낸 음성파일로 올리고 싶었지만,... 올릴 수가 없어서 유튜브에서 모셔온 영상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제 귀에는 내 동생 성가가 훨 감동적이고 듣기 좋았다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 맞는가..
2017.06.23 -
도심속에 곱게 핀 꽃
남편 병간호 가는 길에 만난 도심속의 찔레꽃 한고비를 지나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보이네요. 남편의 회복을 빌며 담아 보았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찔레꽃에 얽힌 꽃말과 전설을 알아보시려면 요기클릭 하셔요.
2017.06.22 -
湖巖(호암) 李秉喆(이병철) 고택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안내팻말] 안내팻말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호암 이병철 고택 전경] 사진에 보이는 고택이 고 호암 이병철 전회장의 고택이다. 골목을 끼고 있는 담벽에 안내판이 이곳이 이병철 고택이란것을 증명해주고 있지만, 이리 저리 둘러보았지만, 하나뿐인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어디에도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가 없다. 결혼 후 대구로 분가하여 가족과 함께 살든 곳이며 이건희 회장의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합니다. 낮선 사람들의 바쁜 일상의 발걸음만 빠쁘게 갈길을 재촉하고...골목은 주민들의 인기척도 없이 조용하다. [안내판 글 내용]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골목길을 따라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한바퀴 휘돌아보았더니, 이건희 생가라고 쓴 벽화가 보였다. [..
2017.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