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3. 04:56ㆍ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며칠 전 태풍이 온다고 하던 날
하늘이 푸르고 맑고 개여 있어서 느끼지 못하고 오전을 보내고
오후 무렵 후덥지끈한 날씨에 우린 올해 들어 처음으로 돗자리를 폈다.
대나무 자리의 시원함에 더위를 잊어볼까 하고, 그때 조용함을 깨치며 울리는 전화
며늘아기가 교회에 갔다가 목사님이 이쪽으로 오신다며....
"놀려가도 돼요?" 하고 묻는다.
순간 밖에서 씽!! 휘리릭!~ 덜컹하고 무섭게 불어대는 비바람
"비가 오는데??"
"목사님이 그쪽으로 가신다기에...."
오고 싶어 하는 며늘아기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럼 와라~~" 흔쾌히 대답부터 하고 옆지기 눈치를 살폈다.
"태풍이 온다는데...비도 오고 바람도 저리 부는데...집에 있지....."
전화 내용을 듣고는 혼잣말처럼 낮게 말한다.
"그럼 어째요?? 모처럼 온다는데.....어떻게 오지 마!! 하고 말해요."
"바람불고 비가 오는데..어린아이 데리고 온다니까 글치..맑은 날 오지.."
아무래도 좀 언짢은 기색이다.
아이구 난 몰려....또 이쪽저쪽 눈치 살피게 되었다.
우선 청소부터 하기 시작했다.
밑에 있는 만지기 쉬운 물건과 깨지기 쉬운 것은 위로 올려놓고, 방도 말끔히 다시 닦았다.
먹을 게 있나? 냉장고엔 뭐가 있지? 그저께 사 둔 참외랑 과일이 있으니
우선은 그것 먹으면 될 것 같고...저녁은 뭘 해 먹이지....
생각은 끊임없이 줄을 잇는다.
씽! 씽!! 불어오는 바람이 뒤 베란다 창문을 흔들어대며 덜컹덜컹 소리를 낸다.
쿵하고 내려앉는 마음...슬쩍 옆 지기 눈치를 살폈다.
신문과 책을 보고 있는 옆 지긴 겉으로 보긴 평화스런 분위기지만,
자꾸만 덜컹대는 창문이 내내 가슴을 가슴을 졸이게 한다.
한참만에 현관 벨이 울리며
안아달라고 두 팔 벌리고 활짝 웃는 래규랑 며느리가 왔다.
"어서 와 비가 오는데 수고했다."
"지금은 비 안 와요."
바람 분다고 닫아둔 창문 때문에 비가 그친지도 몰랐다.
내다본 하늘은 그래도 금방 쏟아질 것처럼 우중충하다.
우린 서로 집을 방문할 때는 꼭 사전에 연락을 하고 간다.
행여 집을 비우고 외출했을까 봐....
또 있다 어느 날 손끝도 까딱하기 싫은 날
마냥 게으르고 싶은 날
그런 날 시부모나 며늘아기가 닥치면 괜히 미안해 질 것 같아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 아무리 한 식구 라지만, 서로 민망할 것 같아서...
우린 서로에게 전화로 먼저 연락을 하곤 집을 방문한다.
곧 비도 쏟아질 것 같고, 이런 날은 짝꿍의 고질병 통풍이 도질까 조마조마하다.
다음날 볼일도 있고, 아무래도 오늘은 하룻밤 재워 보낼 수 없을 것 같다.
며늘아긴 은근히 자고 갔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지만, 모른척했다.
저녁을 해서 먹여 대려다 주면 늦을 것 같아서 밤길 돌아오는 길
나 혼자서 운전해서 오는걸 못 미더워하는 짝꿍의 불안을 덜어 주기 위해
자고 가고 싶어하는 며늘아기를 재촉해서 일찍 나섰다.
"뭐 먹고 싶니??" 하고 물었더니
아직은 배가 고프지 않아서 싫다고 한다.
하룻밤 묵어 보내지 않고 되돌려 보낸다고 아마 속으론 서운했는지도 모른다.
속마음도 모르고....
그러나 날씨도 그렇고, 불안하다.
장도 볼게 있다고 해서 집 근처 E 마트부터 들렸다.
이것저것 사서 넣고 민지 기저귀까지 여기가 더 싸다고 넣고...
2층 레스토랑에서 함박 스택을 저녁으로 사준 후 래규 때문에 먹지 못할까 봐서
대리고 나가서 저녁 먹는 사이 봐주는 대도....이거 몬 사로....
책 가계랑 장남간 가계에 들려 이것도 저것도 마구 만지고 들고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려는 래규랑 씨름하느라 힘이 쭉 빠진다.
'얘는 얼른 안 먹고 뭐 하노??' 속이 상해 올쯤해서 저만치 며늘아기가 걸어온다.
손에는 먹다만 음식이 아까워서 사 달라고 해서 들고....ㅎㅎㅎ
아마 저도 많이 불편했으리라...등에 업힌 아기도 있고, 편히 먹을 수 없었으리라...
은행에 다녀오지 않아 돈이 적다며 만원만 빌려 달랜다. 후후후~~
물건값 계산을 하려고...어떻게 만원을 빌려줘요.
차라리 내가 계산을 해주고 말지....ㅎㅎㅎ
이래서 며늘아기 오는 날은 이래저래 내 용돈 마르는 날.
그래도 늘 시댁에 오고싶어하는 울며느리 이뻐요.
오는것도 가는것도 싫어한다는 요즘 며느리 이야길 들으면....
참 착한 울며느리 마냥 이뻐하고 싶답니다.
그러나 오늘 난 손해본 날....ㅎㅎㅎ
2002년 7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