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6. 05:48ㆍ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소재지 :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379-32
경기기념물 제37호
[송산재 충덕사 정문부장군 묘 안내팻말]
[송산재 충덕사 정문부장군 묘로 가는 출입구 전경]
鄭文孚(정문부, 1565~1624)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壬辰亂(임진란) 일등 공신 우찬성 대제학 의병장이다.
본관 海州(해주), 자 子虛(자허), 호 農圃(농포),
시호 忠毅(충의)이다. 기념비로 北關大捷碑(북관대첩비)가 있다.
[정문부 선생 신도비와 북관대첩비 전경]
1565년 한성부에서 부사 鄭愼(정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鄭彦慤(정언각)이며,
할머니는 이조판서 申公濟(신공제)의 셋째 딸이다.
[안내판 글 포토스케이브포 이어붙이기 편집 내용]
[좌측 신도비각과 우측 북관대첩비 전경]
[북관대첩비와 안내판 전경]
[북관대첩비 안내판 글 내용]
[북관대첩비가 돌아오기까지 연혁]
[北關大捷碑(북관대첩비)]
임진왜란 때에 함경도 일대에서 정문부의 승전을 기록한
北關大捷碑(북관대첩비)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가 2005년
반환되어 경복궁에서 전시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북한으로 인도되었고,
이를 대신해 복제한 것을 경복궁과 이곳에 세웠다.
[신도비각 내 신도비 전경]
신도비는 현종 6년(1665) 세웠던 것을 철종 12(1861)
정문부의 9대손 鄭麟元(정인원)이 추록하여 다시 세웠다.
신도비에는 임진왜란 때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왜적을 무찌른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정문부장군 묘소 표석비]
[묘소로 오르는 돌계단]
[정문부장군 묘 전경]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함경도 지역에서
활약한 의병장 鄭文孚(정문부, 1565~1624)의 묘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선조 21년 과거에 급제하여고, 얼마 후
함경도 북평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서
명천. 길주 등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하여 관북지방을 완전히 수복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길주목사가 되었고,
광해군 2년(1610)에 사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인조 때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41년(현종6년) 무죄가 밝혀져 신원되어
선무원종 1등공신으로 책록되고, 좌천성. 대제학으로 추증되었다.
[정문부장군 묘]
부인 고령 申氏(신씨)와 합장한 분묘로
977년 10월 13일 경기도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되었다.
토분과 묘비, 상석 등의 석조물로 구성되어 있다.
[정문부장군 묘비]
[정문부장군 묘 앞 좌측 문인석]
[정문부장군 묘 앞 우측 문인석]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세상을 떠나기 전 두 아들에게 벼슬을
구하지 말고 남쪽 지방인 진주에 가서 살라고 유언하였다.
문집으로 '農圃集(농포집)'이 있다.
[정문부장군 묘뒤쪽 오솔길]
정문부장군 묘 뒤쪽으로 난 오솔길 너머에는
부친 鄭愼(정신), 5대조 鄭忱(정침)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 鄭愼(정신) 묘 전경]
앞쪽 묘가 아버지 어머니의 합장묘이며,
아버지는 부사 鄭愼(정신). 어머니는 金興禮(김흥례)의 딸이다.
뒤쪽 묘는 5대조 鄭忱(정침)의 묘라 합니다.
[아버지 鄭愼(정신) 묘]
[아버지 鄭愼(정신) 묘비]
[아버지 鄭愼(정신) 묘 앞 좌측 문인석]
[아버지 鄭愼(정신) 묘 앞 우측 문인석]
[5대조 鄭忱(정침) 묘 전경]
[5대조 鄭忱(정침) 묘]
[5대조 鄭忱(정침) 묘비]
[5대조 鄭忱(정침) 묘 앞 좌측 문인석]
[5대조 鄭忱(정침) 묘 앞 우측 문인석]
[아버지와 5대조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다시 담아 본 아버지 정신 묘와 5대조 정침 묘 전경]
[해주정씨묘단비 전경]
[정문부장군 묘 앞쪽에서 담은 신도비각과 묘역으로 오르는 돌계단 전경]
[충덕사로 가는 길]
[충덕사로 가는 길에서 담은 정문부장군 신도비각전경]
[충덕사 전경]
[復地門(복지문) 현판]
[충렬사 삼문 復地門(복지문)]
이곳은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 합니다.
[昭著門(소저문) 현판]
[昭著門(소저문)과 復地門(복지문) 전경]
복지문이 닫혀 있어서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소저문은 활짝 열려있다.
인기척을 내고 주인을 찾았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
목줄이 묶인 개 한마리만 큰 소리로 컹컹 짖는다.
목줄이 풀리면 어쩌지... 두려움은 있었지만, 서둘러 담기 시작하였다.
[首陽古家(수양고가) 현판]
[수양고가와 송산재]
좌측 건물아래엔 수양고가라 적힌 현판이 걸려있고,
정면에 보이는 건물아래에는 송산재란 현판이 걸려있었다.
[松山齋(송산재) 현판]
[송산재와 수양고가 전경]
아마도 장군의 사당과 묘를 지키는 재실인듯 ....
계속해서 짖어대는 소리에 재실 옆 충덕사 협문쪽에서
주인이 나오시며 어떻게 오셨나?고 물으신다.
충렬사를 둘러보기 위해 들렸다고 하니
마침 문중에서 어르신이 오셔서 사당참배를 하시는 중이라 하시며,
찬찬히 둘러보고 사진도 찍어도 된다 허락을 해 주셨다.
[송산재]
[忠德祠(충덕사) 현판]
[忠德祠(충덕사)]
조선중기의 문신 정문부의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문부 사당으로
사당 근처 뒷쪽에 그의 묘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원주형 초석에 원기둥을 세웠다.
정면에는 각칸에 정자살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겸처마 맞배지붕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송산재와 충덕사 사이 협문]
[충덕사 쪽에서 담은 입구쪽 전경]
[멋진 아치형 노거수]
충덕사는 2002년 충의공 농포 정문부 선생의 묘소 아래에
건립돼 추계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경남 진주 이반성면 용암리에 있는
충의사, 가호서원에서는 춘계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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